VBS 마지막날
첫날 어색함은 어디로 가고 이젠 한 가족같아 보이는 선교팀들… 작자 다른 지역 다른 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주님 안에선 한몸이요 한 지제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연극을 통해 물질이 전부가아니 오직 예수를 통해 참 삶의 의미를 전하는 전교팀들.
사막에도 비는 내린다. 당연한 말일 수 도있다. 구름은 있지만 언제 어느곳에 떨어질지 모르는 비. 이 비가 가물고 매마른 땅을 풍족히 적시기엔 너무 적다. 이 비는 마치 성도가 가는 신앙의 역정에 간간히 내려주시는 은혜와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마른 땅이 비를 갈망하듯 성도의 삶또한 주의 은혜의 비를 갈망함 같이 말입니다.
나바호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 성경 학교 첫날 예배 모습.
이렇게 많은 나바호 어린이들이 참석 할 줄 몰랐다. 이 척박한 땅에 내일의 인디오를 이끌어 나갈 어린 꿈들 주님이 불러 주실 줄이야.
세째날 맞이한 선교단원들은 9:40분 Santa Fe를 떠나 또다시 렌트차를 타고 다시 3시간 동안, 130마일을 달려 인디안 보호구역, 나바호에 도착하게 된다.
내일 7/25일 부터 3일동안 있을 나바호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 성경학교를 위해 분주히 준비하는 단원들에 모습에서 진지함을 볼 수 있습니다.
가가호호 방문하여 내일부터 시작될 여름성경학교를 홍보하는 단원들의 모습입니다.
7월22일 주일예배시간에 소금교회 처음으로 단기선교를 떠나는 선교팀이 나와 교우님들께 인사드리는 장면 입니다.
나바호인디안 보호구역이라는 생소한 지역에 선교를 떠나는 어린 청년들을 위한 많은 성원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비록 일주일이란 짧은 기간동안 하나님이 그들을 도구삼아 만들어질 은혜의 통로를 기대하며 합력하여 선을이루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골로새서 2:14~17 그림자와 실체 (미국 BBN방송 5분 복음전도 메시지)
BBN 방송청취자 여러분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평강을 전합니다. BBN방송국에서 오늘을 복음 전도의 날로 정하였다고 해서 특별히 복음 전도 메시지를 부탁받았습니다. 약 5~6분 정도로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오늘 메시지의 제목은 그림자와 실체입니다. 성경 말씀은 골로새서 2:14~17절입니다.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한번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하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후에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심판을 받기 위하여 모든 죽은 자들이 다 살아납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다 몸의 부활이 일어납니다. 이 마지막 심판에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이 된 자들이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만 의지한 자들입니다(계20:11~15).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의 행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내용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성경대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삼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고전15:3,4).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무엇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죽으신 것이며 그의 살아나심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신 것입니다(롬4:25).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까지 앉혀진 자가 됩니다(엡1장과 2장). 참으로 엄청난 내용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내용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딤후1:10). 말은 복음이라고 하면서 영원한 생명이 아닌 썩어질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을 복음이라고 하면 그런 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인과 예수님을 믿는 것의 차이를 아셔야 합니다. 종교인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자신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이런 저런 큰일을 했다고 하는 자들을 향하여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신답니다. 이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일을 한 자라면 자신의 행위를 결코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요6:40) 하나님의 일입니다(요6:29).
오늘 읽은 본문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수많은 율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에 이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거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구약의 모든 내용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으로 봅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이 다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성경이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5:39). 그러므로 구약의 날과 달과 절기나 안식일과 같은 것이 다 그림자입니다. 구약의 성막과 제사장과 십일조와 같은 모든 내용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모든 구약성경을 자기의 손가락에 모아서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어떤 윤리도적적인 행위로 의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지켜서도 의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인간의 종교적인 업적으로도 의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엇을 다 이루신 것입니까?
요한복음에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도 전에 자신이 십자가에 들리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합니다(요3:14,15). 예수님께서 들리시면 예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게 하는 참 지식을 주신다고 합니다(요8:28). 예수님께서 들리시면 자기 자신에게로 모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요1232). 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그림자놀이와 같은 종교놀이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거리끼고 미련해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사라질 옛 하늘과 옛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만들어진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면서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실제이시고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Jesus is real. Jesus is all.
그는 몸은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복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로새서 1:18)
여기서는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합니다. 세상에 자리 잡은 교회이지만 그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바올이 복음을 전할 떄는 아직 교회가 구체적으롤 세상에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의 형성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자리 잡게 됨에 따라 교회와 관계하여 예수님을 말하게 됩니다.
교회가 세상에 자리 잡으면 세상에 자리 잡은 형태를 유지하려고 하기 싶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 존재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예수님을 머리로 말할 때 구원을 보이려고 하여야지 자체의 존속을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사에는 존재의 뜻이 있습니다. 나누어주는 뜻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성령님의 은사를 나누어주는 쪽으로만 보아야 합니다. 자체의 존속을 우선으로 보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여적인 것임으로 성령님의 은사를 보이지 않으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는 육적으로 존재할 내용을 띠지 않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존속하기 위하여 무얼 하여야 할 것은 없습니다. 성령님은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받은 은사를 나누어주는 것으로 교회가 보일 뿐입니다.
어울림교회 황두용목사
간혹 어떤 사람들은 요청한다. 말씀을 나누어 함께 교제해 달라고. 그런 그들의 마음이 때론 안타깝고 가엽기도 하지만 돌이켜 혼자 생각해보면 늘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이들의 시도가 괘씸하기도 하다. 사실 내게 있는 것이 뭔가 새로운 것이 아니며 특별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좀더 균형잡힌 또한 믿음에 속한 해석들과 그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 뿐이다. 또한 이것은 이미 이 블로그 안에 있는 글들로도(만일 그들이 주의 깊게 보고자 하였다면) 충분한 것들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상 새로운 것을 찾는다. 이들은 남들보다 빠르게 새로운 지식으로 자신을 휘감거나, 특정한 사람을 통해서, 장소를 통해서, 예배분위기를 통해서 어떤 각성에 참여되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정작 예수 그분에게로는 가길 원하지 않는다. ‘말씀이 가까워 네 입에 그리고 마음에 있다’라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마치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 사람 저 사람 이교회 저교회 더 신령하다고 여길만한 것들을 따르느라 정작 자기 가까이에 있는 예수는 보지 못한다.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예수를 보고자 매게자인 온전한 사람을 찾지만 정작 사람에게 매여 예수는 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온전한 사람이 없기에)
이 답답한 현실에 나는 뭐라 할 말을 못찾겠다. 참 간사하고 우둔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의 모습을..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말씀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말이다. 어떤 사람 어떤 교회 어떤 설교를 찾지말고 예수 그 주님을 직접적으로 찾아야만 한다.
[출처] 말씀은 가까이에 있다|작성자 박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