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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추구에서 인도로 - 황두용목사2018-09-0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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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에서 인도로

 

인류의 의식은 추구하는 것으로 동트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세상을 바라보며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라고 생각하게 됨으로 인류의 의식은 진작되게 되었습니다. 단지 감각에 의한 경험만 말한다면 추구할 것이 없습니다. 생각을 하게 됨으로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양 철학은 추구하는 것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탈레스는 세상의 모든 물질의 근원은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의식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만물의 근원은 사람의 감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사고를 통하여 말하게 됩니다.

 

감각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생각은 추구함으로 전개되게 됩니다. 그래서 서양 철학은 사고 체계로 진작되어왔습니다. 언제나 감각보다 사고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나아간 것입니다. 사고의 우월성을 이끌어간 것이 추구입니다.

 

사람들은 추구하게 됨으로 사고하게 되고, 또 사고함으로 추구하는 것을 보입니다. 이렇게 추구와 사고는 같이 갑니다. 혹은 사고는 추구가 언어의 옷을 입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추구하는 것이 언어를 입고 공동의 삶에 드러나는 것이 사고입니다.

 

추구와 사고를 극명하게, 그리고 이상적으로 표현된 것이 플라톤의 철학입니다. 플라톤의 철학이 주창하는 이데아는 현상이 아닌 이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데아는 현상적인 영역이 아니라 초월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진다고 합니다.

 

이상이나, “초월은 이미 추구하는 뜻을 내포합니다. 현상 세계에 안주하며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상을 벗어나려는 방향으로 도입된 것입니다. 비록 삶으로는 현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고를 통하여 현상을 벗어난 영역을 의식하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사랑(에로스)을 인간이 추구하는 원동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데아의 높은 차원으로 추구하는 원동력을 사랑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의 사랑이상적인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 경우 사랑은 남과 녀의 사이에서 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일상적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추구는 목적한 바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삶에서 성취하려고 하는 것으로 추구가 보입니다. 그래서 일상적인 삶에서는 추구라는 말 대신 목적이라는 말을 씁니다.

 

목적을 향한 추구에는 생각 또한 방법적인 것을 향합니다. 목적을 현상에 두니 목적한 현상에 이르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상은 조건적으로 이야기됩니다. 따라서 처한 조건을 방법적으로 바꾸어감으로 목적한 조건에 이르려고 합니다.

 

사람은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조건을 개선하는 것으로 추구를 보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 추구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갈등과 충돌이 피할 수 없어집니다. 갈등과 충돌은 현실적인 추구의 소산입니다.

 

인간의 추구가 조건적인 현상에 머물 때 혼돈과 갈등을 피할 수 없다고 보고 플라톤은 이상을 향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이 모호함으로 이상을 향한 추구도 어쩔 수 없이 현상적인 갈등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는 것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으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인도하셨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제자들은 인도와 따름의 설정을 보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라고도 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인도하시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십자가를 향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갖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따른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따른 것이기 보다 자신들의 추구를 담은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한 인도와 따름이라는 점에서, 예수님으로 이야기되는 인도와 따름은 세상에서 보는 인도와 따름과는 구별됩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도 십자가를 향하여 인도하고 십자가를 향하여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향한 인도와 따름을 떠나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인도와 따름이 아니면 세상의 추구를 가미한 것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필요나 가치가 부여된 것은 추구의 대상입니다.

 

예수님의 인도가 십자가를 향한 것임으로 세상의 추구로부터 벗어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게 됩니다. 십자가를 향한 예수님의 순종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한다고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추구가 아닌 예수님을 따름은 성령님에 의하여 인도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의지로 십자가를 향한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지를 보이는 한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십자가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는 추구하는 것을 내포합니다. 깨달음도 추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추구의 대상이 아님으로 세상의 추구를 단절하는 것입니다.

 

추구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인도됨입니다. 물론 이런 인도는 성령님에 의합니다. 십자가를 향한 인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만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향하며 하나님과 함께하게 됩니다.

 

아무도 추구함으로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추구로는 개인이 세워지지 함께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추구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세상에 세워진 십자가는 하나님과 함께가 추구의 대상일 수 없다는 것을 보입니다.

 

하나님과 함께는 예수님으로 인도됩니다. 십자가로 인도됩니다. 십자가를 향한 것이 아니고는 세상에서 말하는 인도는 추구의 일종입니다. 인도하는 사람이 세상 것을 추구함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따르는 사람도 같이 추구하는 것으로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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