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같이 일하던 전기 기사의 병 문안을 갔다.
그분은 무척 나무를 잘탄다 일명 원숭이라 불리울 정도로 7~8미터의 나무 꼭대기에 안전띠 하나 없이 올라 전지 작업을 한다.
그러던 그가 아주 낮은 높이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그가 그 정도 높이에서 그렇게 무기력하게 떨어져 큰 부상을 입을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 못했다.
그러나 지난 주에 그는 아주 얕은 나무에서 미끄러져 등으로 바닥에 떨어졌는데, 갈비와 어깨 뼈가 나가는 중상을 입고 8주의 진단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던 것이다.
그는 멀쩡한 때 능숙한 솜씨로 나무를 타고 일을 했다. 자신감의 충만이요 자신은 실수 하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일을 했다.
본인은 그 얕은 높이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뿐더러 나무 타는 일에는 자신감이 충만했고 그 일을 즐겨 했다.
산 자의 자기 믿음에 대한 섣부른 확신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자세로 그만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등 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큰 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살고자 하는 인간의 몸부림은 거기에서부터 발동하게 된다. 그 상태로 꼼짝하지 말고 있으라는 119 구급 대원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며 구급차도 부르지 말라고 난 괜찮다고 벌떡 일어나고 만 것이다.
어줍잖은 자존심이 발동이 아니겠나,
하지만, 그런 행위가 날 살리는 행위가 아니라 도리어 죽이는 것임을 그는 병원에 입원하여 의사 선생님의 자세한 성명을 들은 뒤에 조금은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어제 병원에 갔더니 그날 등으로 떨어져 다쳤을 때, 꼼짝하지 말고 그냥 죽은듯 있어야 했는데 힘쓰고 일어나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피가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그만 나온 피를 호수로 빼내고 있는 중이라 아쉬워 했다.
그는 이제 주님의 죽이심을 담담하게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은 인간 본능인데 어찌 하겠나,
그러나 살기 위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것이 나를 찌르는 가시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살고자 하는 죽은 자의 자기 애는 세상을 사는동안 아무도 멈추게 못하게 하리라! 하나님 마저도 말이다.
"너는 가만히 있으라"(출애굽13장) 어디에서 많이 본 말씀이 아니던가? 출애굽 사건에서 하신 말씀이다.
어찌 인간이 죽을 위험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말은 너는 그런 위험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자들이 못 됨을 전제로 한 말씀이다. 그렇게 살려는 몸부림은 신자든 아니든 세상에서 계속 된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만히 있어 여호와만을 의뢰하라는 그 말씀을 얼마나 새겨 들었던가,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머물었던 그들이 얼마나 살기위하여 몸부림 쳤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하나님의 선민이란 영의 자유함 보다는 육신의 풍요를 원했던 땅의 사람들임이 여실히 증명되지 않았단가 말이다.
야곱의 육에 대한 애착과 승부욕은 결국 하나님과 대면하는 마지막 결투에 봉착하게 된다. 어찌 인간이 하나님을 이겨 먹을 수 있는가,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 앞에 무릎꿇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을 이겼다는 이스라엘이 되지 않던가.
이것은 비단 야곱의 경우만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대표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포함되는 것이다. 우린 결코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무릎꿇어 내가 스스로 깨달아 예수 믿은 자들이 아니다. 인간은 그리 신령한 자들이 아닌 것이다.
다만 어찌하여 나같은 자는 택하셨는지요. 어찌 나같은 자를 사랑하셨는지요. 그분의 편애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다.
그럼 이젠 우리 택하심은 입은 자들은 항상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그분의 속을 상하지 않게 오늘도 철든 자식으로 '나 죽었어,하며 순순히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물론 영생은 단번에 주신 믿음을 통하여 영원 전에 약속된 약속을 근거로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다.
성화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사치일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진리를 아는데서 자라가라 하셨던 것이다.
아무도 그날이 오기까지 나 구원 받았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진정 택하신 자들 만은 이렇게 죽여가는 것이다.
왜 네가 살아났음을 주지 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죽은 자의 살려는 몸부림은 세상을 사는 동안 계속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성도의 무덤이기 때문에,
(창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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